이별.. 헤어진후에

25번째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빨리 찾아온 더위와 함께 이별이 날 찾아왔다.
그와 나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조금은 치열하게, 또 조금은 안일하게,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별이 찾아왔다라는 말은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 싸울때마다 우린 서로 늘 헤어지잔 말을 서두에 놓고 시작했으니 곁에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남자가 참 옹졸하다며 그의 성정체성을 무시했던 그 말부터였을까. 아픈 그를 타박하며 바쁘다고 전화를 끊은 그 순간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이유가 너무도 많아 한가지를 꼽기가 어려웠다.
이런 나를 그는 어떻게 7년이라는 세월을 만났을까?
이쯤되니 대단해지는 그를 생각하며, 다시한번 가슴이 아려온다.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을정도로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왜 그가 떠난 지금에 와서 더 사랑하지못한 아쉬움에 마음한켠이 아릿해지는걸까.

그에게 이별을 고할때마다 구질구질하게 이유를 설명했던 나와달리 그의 이별은 정말 쿨하고 심플했다.

” 이젠 더이상 널 사랑하지않는거같아. 너와의 싸움을 견딜 정도의 마음이 남아있지않은거같아. 그래서 그만하고싶어. 미안해 “

어느때보다 다정한 말투였는데, 꿀이 발린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혔다.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띵했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 말이었구나. 키가 크거나,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사랑한다 속삭이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나를 설레게했었는데..연애 중반 이후, 잊고있었던 그의 매력이 이별을 고하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다니.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며 그의 이별사를 담담하게 듣고있었던 난, 그때까지도 그와의 진짜 이별을 실감하지못했던거같다. 오히려 나의 뒤통수를 친 그에게 훗날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줄 알았다면, 조금더 세세히 뜯어보고 눈에 담아놓을것을.

진짜 이별을 얘기한 다음의 그는 무섭도록 매정했다. 갑작스런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를 위해 최소한의 배려로 연락은 계속 받고있었지만, 노골적으로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7년동안 이토록 무서운 남자와 연애했나 싶을 정도로, 이전에는 알지못했던 같은 목소리의 다른남자에게 난 끊임없이 매달렸다. 비참했다. 연애내내 늘 갑의 위치에 있었던 난, 내가 헤어짐을 고할때마다 나를 붙잡는 그를 당연하게 느꼈었다. 한때는 내가 더 잘났다고 생각했었고, 조금 지나서는 그가 나를 더 사랑하기때문이란걸 알고 악용했다. 내가 그의 입장이 되보니, 내가 그를 붙잡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겨난 기분이었다.

아무튼 난 비참하게 그에게 매달렸다. 언젠가 그와 나란히 누워 스토커 관련 TV 뉴스를 보며 함께 혀를 찬적이있었는데, 그 스토커의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로 절박했다. 그가 당장 죽거나, 어디로 떠나는게 아닌데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거리에 살고있음에도, 당장 어디론가 사라질거처럼 불안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봐야만 지금 이 미치도록 혼란스러운 상황이 정리될거같았다.
물론, 통화해봐도 해결되는건 없었지만.

이별은 아주 쉽게 내 삶의 균형을 빼앗아갔다. 나는 제법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편이었는데, 일에 대한 열정도, 집중력도 전부 그의 생각에게 빼앗겨버렸다. 이 일을 하게될때까지 옆에서 조력해준 그가 생각나서 더더욱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걱정됬던 대표님은 내가 늘 좋아한다 노래를 부르던 초밥을 사주며, 고민상담을 자처했다. 하지만, 인생선배라는 분의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다가도 초밥이라면 벌떡 일어나던 내 혀도 미각을 잃었다.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며칠은 붙잡고, 몇주는 울다보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지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가는듯했다, 24시간 하던 그의 생각을 반정도. 또 그 반의 반정도.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두어달정도 지나니 이제는 일에도 집중하고, 사람들을 만나도 순간만큼은 즐겁게 웃게되었다. 여전히 매일 찾아오는 밤은 무서웠지만. 새벽녘 일어나서 한참을 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심장이 답답하고 당장 죽을것만 같았는데 이런 속도라면 한두어달 후에는 다 잊고 잘 살아 갈것도 같았다.

그의 바뀐 프로필 사진을 보기전까지.

그의 SNS 프로필 사진은 늘 내 셀카였다. 그의 사진첩에 9할이상이 내사진이었고, 나머지 1할은 업무용사진. 물론 이별전 이야기이기에, 지금은 그의 사진첩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내심 이별 후 비워져있는, 바뀌지않는 그의 프로필을 보며 안심했었던거같다.

연상으로 보이는 여자와 등산복을 입고 찍은 사진.

운동과 등산을 즐기는 그와 달리, 난 운동을 지독히도 싫어했다. 그런 나에게 맞춰 나를 만나기전 주말 등산을 좋아했던 그가 나와 데이트하는 것으로 취미를 바꿨다. 물론 난 그걸 당연하게 느꼈었다. 사진을 처음봤을 땐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 그 다음엔 그렇게 등산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난 7년동안 왜 한번도 그에게 등산가자는 이야기를 하지않았을까 하는 후회. 그 후엔 우린 다시 만날수없겠구나.하는 단념.

내가 네이버 검색창에 ‘헤어진 남자친구 돌아오게하는 방법’을 검색했던 그 시간, 너는 다른 여자를 만나 나라는 여자는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있었겠구나. 순간 내가 불쌍해지면서, 한번도 그 아니면 안된다 생각했던 내 옆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혀보기로 했다. 고2때 처음 그를 만났다. 그가 첫사랑이었고, 첫남자였기에, 성인들의 연애경험이 전무한 나는 짧은 기간동안 단기 연애 과외를 받듯 여러남자를 한꺼번에 만났다. 물론 가벼운 데이트 정도로만. 그 사람 중에는 마음이 맞아 한달 반정도 만난 남자도 있었는데,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클럽DJ를 하는 흥이 넘치는 남자였다. 매일밤 드라이브하고, 당일치기로 여행도가고, 즐겁고 신났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남자를 만나도 아주 잠시뿐. 귀찮고 시시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를 좋아했던거구나. 라는 슬픈 결론을 얻었다.

점점 그가 없는 일상 생활에 익숙해져가고, 1년이 지난 어느날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였다. 친구와 퇴근 후 직장 상사 뒷담화를 하며 한잔 하는중이었는데, 순간 아무소리도 들리지않았다. 마치, 그의 번호가 눈동자안에 새겨지는거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잠깐만..잠깐 “

친구에게 잠깐만을 연신 외치며, 벌떡 일어나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조용한 곳을 찾아 걸었다.
조용한곳. 그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을수있는 조용한곳.
걸어가면서도, 통화버튼을 누르면서도.. 잘못건게 아닐까? 실수로 전화한거라면 어떡하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잘못 전화했다해도, 그렇구나 하고 넘길수 있을 정도의 가벼움으로.

” 여보세요. “

한 3초간 정적. 그 후에 나오는 여보세요. 7년을 넘게 들었던 너무도 익숙한 그목소리가, 왜이리도 낯설게 들리는지..

” 나야. 잘지내지? “

조금은 식상하고 뻔한 레파토리. 잘지냈겠니? 라고 되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담았다.

” 응. 무슨일이야? “

최대한 도도하게, 시크하게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고작 전화 한통에 흔들리는 내 모습이 그에게 비춰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 보고싶어서. “

그 말을 듣고싶었다. 세상에서 제일 듣고싶었 던 말. 근데 왜 지금 난 그말이 달갑지않을까. 그의 목소리에 미친듯이 흔들리면서도 어느 한 구석은 그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나 헤어졌어. “

그 다음 대목에서 이유를 스스로 깨달았다. 그녀와 헤어져서 내게 연락한거구나. 내가 원하는 보고 싶다는 말은 순수하게 나라는 사람을 보고싶어하는 마음이었는데.. 나와 헤어질때의 그의 마음은 곧 죽어도 이해가 안됬는데, 지금 그의 상황은 언젠가 나도 경험해본적이있었기에 알꺼같았다. 지금 여자친구와 헤어지니 내가 생각이 난거구나. 씁쓸함, 실망감, 그래도 나를 잊지않았다는 것에 대한 기쁨. 복합적인 감정들이 마음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위로를 해줘야하는걸까? 아님, 꼬시다고 놀려야하는걸까? 대체 그는 무슨 대답을 바라고 내게 이런말을 하는걸까.

” 그래. “

” 보고싶어. 만나자. “

” 미안. “

어차피 그에게서 어떤 전화가 걸려왔어도, 내 대답은 처음부터 정해져있는 거였다. 우린 끝났어. 널 너무 사랑했지만, 그건 나를 사랑했던 너와, 그런 너를 사랑했던 내모습, 그리고 너와의 추억들을 사랑했던 거였어. 다른 여자와의 추억을 만들고 돌아온 너가 아니야.

어쩌면 그때 그가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면, 난 영원히 그에게서 미련을 버리지못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사람과 함께있어도, 내가 돌아갈 곳은 너의 곁이라는 생각을 그때까지도 버리지못하고있었으니까.
고마워. 연락해줘서. 우리 다신 보지말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