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억울한 과거

내가 억울한 건 아니고 우리 아버지의 억울한 과거입니다
매년 5월 6월이 되면 우리 아버지의 뼈아픈 과거가 회상됩니다
아버지는 당시 6월항쟁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졌을 때, 대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다니시던 학교의 학생회에서 아버지보고 시위에 참여하라고 협박을 다 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대학에 합격하여 등록금마련이 시급해서, 부모<나에게는 조부모님>님이 사돈댁에 가서 돈을 빌리려고 했는데, 거기도 돈이 없어 사돈댁이 농사하는 땅을 다 팔아 아버지의 등록금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해 꼭 성공해서 다 갚으리라 마음을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공부에만 몰두하셨습니다
그런데 6월항쟁이 일어나고 나서 학생회에서 아버지보고 시위에 참여하라고 하기에 사정이 있어 못한다고 말을 하였더니 협박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참가 안 하고 공부만 하였는데, 어느 날 공부를 하고있는 아버지를 학생회 간부 4명이 아버지를 불러내어 각목으로 무작정 구타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몰라도 온몸이 피투성이고, 병원에 실려 가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다리 하나를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은 병원비 때문에 조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집도 팔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아버지의 꿈도 좌절 대고, 약 먹고 자살을 시도하셨는데 이웃집 아줌마가 발견을 하여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복이 있으셨는지, 아버지의 친구 아버님이 금 세공사를 하고 계셨는데, 아버지 친구가 자기 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가 장애가 있으니 기술 가르쳐서 밥벌이하게 해주었으면 하고 부탁을 드렸다고 합니다
6년 동안 죽어라. 세공기술을 연마하여 종로에 있는 금, 은방에서 일하며 착실하게 돈을 모으셨고 그 돈으로 결혼도 하고, 단독주택도 장만하여 마당 한 쪽에 창고를 하나 지어서 거기다가 가정공업사를 차려 금, 은 액세서리를 주조하고 계십니다
5.18 민주화운동, 6월항쟁 시위에 참가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아픈 역사입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우리 아버지처럼 시위에 참여 하지 않는다고 구타당하고 장애인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를 한다고 하면서 왜? 다른 사람들의 시위참가 결정권은 안 주는 건가요? 이게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