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보고싶은 사람

 
여기다가라도 풀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적어봅니다.

헤어진지도 벌써 1년 가까이 되었네요
엄밀히 말하면 ‘헤어졌다’고도 하기 애매해요. 사겼다고 할 수도 없는 사이었거든요.


주변 사람들한테는 이런 얘기 꺼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친한 친구 두어명한테밖에 못꺼내기도 했고요.. 공감이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케이스이기도 하고, 첫 마디부터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난감했거든요.

저는 여자고.. 제가 좋아했던 사람도 여자입니다.
레즈비언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에 가까워요.
여자를 좋아해본 건 처음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여자를 좋아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은 남자친구만 사겼었고 동성애에 딱히 관심있지도 않았어요.    
저는 이 친구를 여자라서 좋아했다기 보단, 정들고 좋아지고 보니 그냥 이 애 성별이 여자였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이 친구를 정말 좋아한다고 느꼈을 땐 고민이 많았어요. 동성을 좋아해본 것도 처음이고, 연하를 좋아한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 얘랑 사겨야 하는지… 그 친구도 저도 서로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음가는 대로 하기엔 저는 따졌던게 너무 많았어요. 제 나이는 서른이었고 제 주변 친구들은 전부 남자친구랑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저희 엄마도 남자 안만나냐 결혼 언제하냐 압박이었고요. (그리고 참고로 동성애자라면 호적을 파버릴정도로 싫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철없는걸까. 사귄다고 해도 제대로 만날 수 있을까? 누구한테 제대로 공개하지도 못할 연애인데. 이게 맞는걸까. 동성애에 관한 지식도 전혀 없고. 내 나이, 평범한 결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각 등등
제 마음이나 그 친구의 마음보다는 주변을 더 신경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계속 애매한 태도를 보였고 그게 그 친구에겐 많이 상처였을거에요.

오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역시 이 친구가 좋으니까 진지하게 고백하고 사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이미 그 친구는 저에게 지쳐서 이별얘기를 꺼냈어요.
그제서야 왜 그동안 우물쭈물 망설였는지 후회가 많이 되더라구요.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좋아한다는 표현이라도 실컷 할껄. 아니 실컷 표현했으면 안떠났을까..
붙잡기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고 찌질하고 구차하게 매달려도 봤는데 그 애는 이미 다 헤어질 마음을 먹은 것 같더라구요. 참 단호했어요. 제가 매달릴수록 절 더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같아서 더이상 어쩌지도 못했어요. 미움받긴 싫었으니까요..
망설이다가 못한 것들 때문에 후회하고 미련만 남은 저와는 달리
그 애는 열심히 사랑했고, 좋아하는 마음에 최선을 다 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그랬어요.
진짜 제가 바보같고 한심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훨씬 어른스러웠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많이 기대기도 했는데 그게 힘들었나봐요. 정말 제가 너무 서툴고 어리고 여유가 없었어요…

그렇게 이별하고 나서는 좀 죽은 것 처럼 지냈어요.
밥도 안먹고 하루종일 엉엉 울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청승맞게 혼자 여행도 가보고 매일 술마시면서 폐인처럼 지내도 보고 망가질대로 망가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사람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평소 배우고싶었던 공부도 하고. 요즘은 겉으로 보기엔 되게 바람직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처럼 지내요. 근데 아직도 그 친구 생각만하면 마음아프고 눈물이 나요.
예능프로 보면서 낄낄 웃다가도 갑자기 울고 그래요.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미친거같아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1년이 지나도 이러고 있으니 이젠 약간.. 심각한 거 아닌가 싶어지더라구요.
정신과나 상담같은건 받기가 싫었어요. 더 좋은 사람 있을거다, 지난 사람한테 미련 버려라,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거다 이런 뻔한 말 들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말들이 다 너무 아파서 듣기 싫었어요. 얼른 잊고 괜찮아지기 싫었어요.​

주변에서 물어봐도 선뜻 여자애를 좋아했는데 헤어졌어.라고는 말 못하겠더라구요. 그냥 대충 썸타던 남자랑 잘 안됐어. 라면서 거짓말했어요.
나쁜새끼네. 남잔 원래 다 그래 이런 식의 위로를 들으면 그냥… 웃겼어요. 남자 아닌데…. 나쁜새끼도 아닌데. 그리고 헤어졌단 명분으로 위로 받는것도 한두번이지. 1년 내내 친구 붙잡고 힘들다고 징징댈 수는 없잖아요.
엄마는 선을 보라며 남자를 소개시켜줬어요. 저보다 10살이나 많은, 마흔살인 남자였는데 돈도 많고 직업도 괜찮고 집도 차도 있는 안정적인 남자라며. 요즘 10살차이 별것도 아니니 더 늦기전에 시집가서 가정꾸리고 살라며ㅋㅋㅋㅋㅋ…. 그 때 기분은 뭐라 말로 설명을 못하겠더라구요. 지금 마음이 선보고 누굴 만나고 그럴 마음이 아닌데… 만약 그 애랑 헤어지지 않고 잘 만나고 있었다면 엄마가 선보라고 했을때 뭐라고 말했을까.. 솔직하게 털어놨을까, 아님 관심없다고 넘겼을까. 괜히 그런 생각도 하니까 서글펐어요.

이별한지 1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너무 아프고 슬퍼요. 대체 얼마나 더 있어야 괜찮아질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지기는 하는걸까요. 아직도 미련이 한가득이에요. 아직도 습관처럼 혼자 이름을 부르고 잘 지내고 있을까 지금은 뭐할까 웃고지낼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다가 또 그 애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더이상 연락하기 싫다, 그리고 절 싫어했던 마지막 순간들 이런 것들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고
이제 앞으로 다시는 그 애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막막해서 살고싶지도 않아져요.
이런걸로 죽음 운운하고 있으면 나약하고 어린건가 싶어서 애써 생각안하려고 하는데 그럴때도 스스로가 한심해서 진짜 너무 힘들어요… 무엇보다 만약 그 애가 알게된다면 저 언니는 아직도 저러고있나 하면서 더 질색하겠죠 아니 이젠 제가 그 애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없을거에요. 그런데도 이렇게 맹목적인거 보면 참 답없고 한심하고의 반복…

제가 너무 어린걸까요? 사람이 다 사랑하고 이별하면서 성숙해진다는데 전 그냥 제자리인 것 같아요.
어떤 날은 씩씩하게 잘 살아야지, 하다가도 어떤 날은 죽고싶을만큼 무너져요.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할 자신이 없어요.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고 절절하진 못할거 같아요. 그러고 싶지도 않구요. 마음 쓰는게 지친 느낌이에요. 사람 만나서 울고웃고 하는것들이 다 감정낭비같아서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남들이 들으면 좀 웃기고 이해도 안갈거에요
제대로 사겼다고 할 수도 없고 사실 거리가 멀어서 몇번 만나보지도 못했어요 저는 서울에 살았고 그 친구는 기차로 3시간 반정도 가야하는 지방에 살았거든요. 만나서는 겨우 손 잡아본게 다였어요. 거의 카톡이나 전화만 하고 지냈어요. 그마저도 저는 낮에 일하고 그 친구는 밤에 일해서 서로 일어나고 자는 시간이 완전 반대였고 퇴근길이나 점심시간에 잠깐씩 얘기하는게 전부였죠.
겨우 그런 사이가지고 이러고 있냐 이해가 안간다 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따지고보면 뭣도 아닌 사이인데.
서로 소소하게 일상을 공유하면서 걔가 밥먹는 모습은 이럴까, 졸고 있는 모습은 이렇지 않을까 혼자 멋대로 상상하다보니 제 머릿속에서 환상들이 더 커졌나봐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답도 많이 내려보고 생각정리도 많이 해보고 나는 정상인가 미쳐있는가부터 시작해서 헤어지고 난 뒤에도 그 애의 존재를 그 애와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면 좋을지 너무 난감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여느 연애하다 헤어진 사람처럼 나도 아프고 슬프고 힘든데 동성애라는거,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제대로 사겨본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다고 하는것도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누구한테 편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얘기들이라는 거땜에 더 외로웠어요.
그래도 익명을 빌어서 여기다 터놓기라도 하니까 조금 낫네요
아무리 다르고 모질게 생각하려고 해도 마음이 마음대로 되진 않네요
나 싫다는 사람 짝사랑만 1년째 한 꼴인데 아직도 정신 못차렸어요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아직도 많이 보고싶어요.


찌질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